개발자가 블로그를 운영해야 할 이유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에 기반합니다

얼마 전 다른 분과 만나서 글쓰기와 블로그 운영에 관해 얘기할 기회가 있었다. 개인적으로 나를 아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실제로 나 스스로가 블로그 운영의 혜택을 봤다고 생각하고 있어서 평소에도 "블로그를 운영해야 한다."고 믿으며 여러 사람에게 권하고 다녔다.  그렇다고 또 대단한 성공을 거둔 것은 아니라서 공개적으로 글로 남기기엔 조금 꺼려졌었는데, 그 자리에서 얘기를 하다가 문득 한 번 남겨보긴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극히 개인적이고 사소한 경험이지만 뭐 어떤가, 어차피 내 개인 블로그인데.

이유1. 정확한 지식을 얻을 수 있다.

예전에 신입 개발자 면접과 관련한 글을 쓰면서 고무 오리 디버깅에 관해 얘기한 적이 있다. 고무 오리 디버깅이란 고무 오리 인형을 보고 자신의 코드를 설명하다보면 어느샌가 스스로 문제를 깨닫게 된다는 디버깅 방법이다. 다시 말해, 누군가에게 설명하는 행위 자체만으로도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고무 오리 디버깅이 문제점을 찾는데 유효한 방법이라면, 자신이 배운 것이나 경험한 것에 대해 블로그를 작성하는 건 기억을 오래 보존하고 보다 정확한 지식을 쌓는데 도움이 된다. 완전히 이해했다고 생각한 지식을 글로 다시 정리하다보면 의외로 논리적인 빈틈이 많고 내가 잘 이해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자료를 찾다보면 오래 전부터 가지고 있던 지식이 잘못됐다는 것을 알게 될 때도 있고, 몰랐던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될 때도 있다. 예를 들어 URL을 전달할 수 있는 hash의 최대 크기는? 이라는 글을 작성하기 전까지는 2KB가 최대 제한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실제로 테스트를 해본 결과  다른 방법을 통해 4KB까지 지원되기도 하고 다른 브라우저에서는 60KB까지 지원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런 경험이 축적되다보면 나중에는 무엇을 배우든 이 지식을 나라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지 상상해보게 된다. 그러다가 머릿속에서 설명이 막히면 더 정확한 지식을 찾곤 한다.

글쓰기 실력이 느는 것은 덤이다.

이유2. 좋은 동기가 된다.

그리 대단하지 않은 블로그일지라도 나에겐 나름의 애착이 있는 블로그라서 나는 내 블로그를 말 그대로 살아있는 상태로 유지하고 싶다. 포스팅에 너무 게을러지는 것 같길래 재작년에는 계간 블로그를, 작년에는 월간 블로그를 연간 계획으로 삼고 지켰고 올해는 격주간 블로그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이렇게 글의 갯수를 미리 정해두면 그 때부터 소재를 열심히 찾게 된다. 마침 쓸만한 소재가 준비되어 있었다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새로운 소재를 직접 만들게 된다. 좋은 외국 블로그 글을 찾아서 번역하거나, 새로 나온 핫한 프로젝트를 경험해보거나, 컨퍼런스를 다니거나 혹은 직접 새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이다.

그렇게 작성한 글 중 하나가 Quora라는 외국 사이트에서 좋은 답변을 발견해서 번역한 "프론트엔드 개발자는 왜 구하기 어렵나요?"이다. 뒤에서 자세히 얘기하겠지만 의외의 경력으로 연결되기도 했고, 당시에는 물론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내 블로그에서 가장 조회수가 높은 글로 자리잡았다.

무엇을 선택하든 나태함을 방지하고 새로운 것을 경험하고 배우는 데는 큰 도움이 된다.

이유3. 새로운 기회가 된다.

세상에는 정말 "괴물"이나 "천재"라는 말이 어울리는 어마어마한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존재하지만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범함과 싸우며 산다. 다시 말해 나 정도의 재능을 가진 사람은 어디에든 있다는 뜻이다.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 속에서 조금이라도 눈에 띄려면 자신을 홍보해야 하고, 블로그는 좋은 홍보 수단이 될 수 있다. 대단한 프로젝트를 만들어서 실력을 드러내는 것에 비하면 블로그는 훨씬 접근하기 쉬운 방법이다.

2009년도 쯤부터 한동안 영문 기사를 한국어로 번역하는 블로그를 운영한 적이 있다. 당시만 해도 영문 기사를 한국어로 번역하는 분들이 많지 않았던 때라 나름의 사명도 있었고 덕분에 지식도 많이 쌓게 되었다. 어쨌든 이 블로그가 소소하게 인기를 얻었고 운영한 지 세 달쯤 지난 뒤에 출판사 관계자 분이 블로그를 통해 번역서의 리뷰어를 제안해왔다. 그러다가 그게 직접 번역을 하는 것으로 이어졌는데 그게 바로 내 최초의 번역서인 "거침없이 배우는 자바스크립트"였다. 그 책이 그대로 번역 경력으로 이어져 지금까지 총 9권의 책을 번역하게 되었다.

비록 저서는 아니었지만 몇 권의 번역서를 낸 것은 의외로 경력에 큰 도움이 되었다. "출판된 책"이라는 경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처음 미국 스타트업에서 일하게 될 때도 대표가 내가 번역한 책이 무엇이었는지 물어보고 이사회에 보고할 정도였다.

이후에 다른 출판사 분으로부터도 출간 제의를 받은 적이 있는데, 그 분이 말씀하시길 출판사는 늘 좋은 저자에 목말라 있지만 의외로 글쓰는 개발자 분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아쉽게도 사정상 책으로 나오지는 못했지만 중요한 것은 블로그가 기회로 이어졌다는 부분이다. 그렇다고 내가 글쓰기에 특출난 재능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나보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은 수도 없이 많다. 하지만 그 중 블로그를 운영하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재능은 발휘할 때 비로소 빛이 난다. 그리고 블로그는 자신의 재능을 드러내기에 좋은 도구이다.

번역이나 저서 외에도 이직, 프로젝트, 컨설팅 등 여러 기회도 얻을 수 있었는데 여기에 블로그가 직간접적으로 큰 몫을 했다. 최근 몇 년간 블로그를 통해 나를 알게 되었다는 분을 종종 보았다. 재택근무 7년차에 모태 집돌이라서 개발자 모임은 커녕 집 밖에 나갈 일도 거의 없었는데 말이다. 그 중에는 실제로 좋은 인연으로 이어진 분도 있었고 잠재적으로 좋은 기회가 될 인연도 있었다.

이유4. 의외의 부수입으로 이어질 수 있다.

"프론트엔드 개발자는 왜 구하기 어렵나요?"라는 글이 막 공개되고 한창 인기를 끌 무렵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은 IT 교육 스타트업에서 연락을 받았다. 무더운 여름날 내가 사는 먼 곳까지 찾아와주는 수고로움을 기꺼이 해준 대표님과 몇 차례 미팅을 가진 후 거기서 강의를 시작하게 됐고 그게 몇 년간이나 이어졌다. 나름 수요가 있는 강의였던 덕분에 하면서도 즐거웠고 적잖은 부수입과 보람도 안겨주었다. 그 스타트업이 바로 지금은 이름이 꽤 알려진 패스트캠퍼스이다.

앞서 말했듯 번역서를 낼 수 있는 기회도 얻어서 인세 또는 번역비를 받을 수 있었고, 블로그 글을 써달라는 의뢰를 받은 적도 있다. 내 블로그 글 중 Video 태그, React 관련 글이 의뢰를 받고 쓴 글인데 덕분에 소소한 원고료를 받기도 했다. 그래서 React 관련 글은 webframeworks.kr에도 동시에 게재되었다. 인터넷 매체인 ㅍㅍㅅㅅ에도 내 글이 몇 개 게재되어 있는데 원고료 대신 좋은 곳에 기부해달라고 한 적도 있다.

그 밖에도 여러 좋은 제안(금전적인 보상을 포함하여)도 받았지만, 체력과 시간 그리고 역량의 한계 때문에 거절할 수 밖에 없었다. 과분하게도 이렇게 좋은 부수입의 기회를 얻을 수 있게 된데에는 블로그가 분명 큰 역할을 했다.

그럼, 어디서부터 시작할까?

"블로그 하세요"라고 말할 때마다 사람들이 보이는 반응의 대부분은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뭔가 어려워보이고 대단한 글을 써야할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간단하게 오늘 당장 시작할 수 있는 몇 가지 글감 예시를 들어볼까 한다.

1. 번역

영어나 일본어 등 외국어에 자신이 있다면 해외 블로그나 웹 사이트의 좋은 기사를 발굴해서 번역해보는 것도 좋다. 꼭 번역이 아니라도 좋을 기사를 찾는 과정에서 좋은 글감을 발견할 수도 있다. 내 블로그에도 꽤 많은 번역글이 있고, 아까 언급했던 몇 년간 사람들이 많이 찾는 그 글 역시 번역글이다.

2. 배운 것 정리

"저는 초보라서 쓸 글이 없는데요"라는 사람도 있다. 누구나 다 아는 내용을 쓸 필요가 있냐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 누구에게나 신입 시절이 있고, 사실 그 때 공부도 가장 열심히 하고 자료도 가장 열심히 찾는다. 대부분의 프로그래밍 서적이 초보자를 대상으로 하는데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자신이 배웠던 것, 겪었던 것을 공유하면 누군가는 공감을 해준다.

3. 간단한 것도 좋다.

내 블로그 접속 통계를 보면 의외로 많은 사람이 anchor 태그의 download 속성에 관한 글을 본다. 그저 레퍼런스 사이트를 뒤적거리다가 못 보던 신기한 속성이 있어서 간단히 살펴보고 쓴 것이라 그리 오랜 시간을 들이지 않았던 글이다.

4. 고생은 좋은 글감이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같은 실수와 문제를 겪는다. 고생을 하고 나면 기쁘게 "글감꺼리"로 생각하자. "폼 전송된 한글 문자열이 깨질 때"는 UTF-8이 대세인 지금 필요없을 것 같은 팁인데도 최근까지 보는 분들이 있다.

마치며

확신할 수는 없지만 나는 지난 10여년간 워드프레스로 블로그를 운영해온 것이 워드프레스를 만드는 Automattic에 입사하는 데에도 도움이 되었을 것이라 짐작하고 있다. 그렇게 오랜 시간 사용해왔다는 것만으로도 굳이 내가 워드프레스에 익숙하다는 것을 알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동료 중에는 "나도 그렇게 오래 운영한 블로그가 있었으면 좋았을 걸"이라고 부러워 한 이도 있다. 물론 10여년 전 처음 워드프레스를 사용할 때는 이런 식으로 이어질 줄 전혀 몰랐다.

굳이 직접적인 효과를 노리지 않더라도 블로그는 마치 GitHub 계정처럼 내 삶의 궤적을 증명해 줄 수 있는 좋은 도구가 된다. 성실하게 작성한 블로그를 보면 얼마나 충실하게 신입 시절을 보냈는지, 실수를 통해서는 어떤 교훈을 배웠는지 알 수 있다.

겨우 격주간 블로그라는 목표도 달성못해 허덕이는 입장에서 권하기엔 다소 면목이 없지만 그래도 이렇게 말하고 싶다.

블로그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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