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자가 블로그도 잘 써야 하나

개발자의 글쓰기를 다루는 책 이야기

아주 오랜 옛날, 블로그가 (과장 좀 보태면) 요즘의 AI처럼 대단한 신문물이었던 적이 있다. 미래를 대비하는 사람이라면 만들어야 할 것 같고, 안하면 뒤쳐질 것 같고, 그래서 너도 나도 만들고 기업들도 앞다투어 블로그를 개설하고 그랬던 시절이 있었다. 대체 블로그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서 "그러니까 블로그란 말이다, 웹 로그(web log)의 줄임말로..."라는 정의부터 시작하던 글과 책이 많았다.

나도 그때 블로그를 시작했다.

처음엔 호기심이었고, 겉멋이었고, 중2병의 발산이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글을 쓰고 다듬다 보니 어느덧 나의 "개발자"라는 정체성에 꽤 많은 기여를 한 도구가 되었다. 인맥이 그리 넓지 않고 집에서 지내는 걸 좋아하는 내가 그나마 다양한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살아갈 수 있었던 데는 블로그의 덕이 컸다고 생각한다. 번역이나 강의를 포함하여 내가 했던 다양한 활동의 시작점에는 언제나 나의 이 작고 소중한 블로그가 있었다.

블로그의 장점은 그것만이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블로그는 내가 계속 글을 쓰도록 만들었다. 예전만큼 자주 글을 쓰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좋은 글감이 생기면 "블로그에 올려볼까?"라고 먼저 생각하곤 한다. 덕분에 글을 쓰는 훈련이 되었고, 글쓰기는 논리적으로 생각을 정리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돌이켜보건대 AI 시대에 와서 가장 필요한 역량을 블로그 덕분에 훈련했던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 글쓰는 데 부담이 줄어든 데는 블로그 덕이 큰 것 같다. 문서를 만들고, 긴 프롬프트를 쓰는 게 나에게는 그다지 고통스럽지 않다.

어쨌든 좋은 게 있으면 나누고 싶은 것이 사람 마음이라, 만나는 개발자마다 특히 나에게 배웠던 많은 주니어 개발자와 개발자 지망생들에게, 심지어 번역가인 아내에게도 "블로그를 했으면 좋겠다"고 권하고 다녔다. 앞서 말한 것 외에도 몇 가지 이유가 더 있지만 그건 나중에 기회가 있을 때 얘기하기로 하자. 그러던 중에 이런 책이 있다며 번역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는데 내가 늘 말하고 다니던 바로 그 이야기였다.

한국어판은 조금 더 경쾌한 "개발자가 블로그도 잘 써야 하나요?"로 출간된, "Writing for Developers"가 그 책이다.

당연한 얘기인데 ‘개발자’가 블로그를 쓰는 방법에 관한 책이라서 다른 직군에도 권할만한지는 모르겠다. 주요 독자가 개발자인 기업의 기술 블로그를 운영하는 분들에게는 필요할 수 있겠다. 책 내용의 대부분은 글쓰기 동기를 부여하고, 글 주제를 찾고, 실제로 기술 글을 쓰는 여러 기법에 관해 다루고 있다. "아, 블로그 해야하는데"라는 생각을 n년째 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꼭 읽어 보기를 바란다.

여기 나온 블로그 글이 내 관심 분야가 아닌 게 대부분이라 번역하는 게 쉽지는 않았다. 아마 예시 블로그 글이 자신의 분야와 달라서 흥미를 잃을 분이 있을까 싶어 미리 말하자면 그럼에도 도움이 된다고 말하고 싶다. 중요한 것은 내용이 아니라, 그런 기술적인 내용을 "어떻게" 풀어냈는가 하는 것이니까. 물론 관심 분야라면 더 재밌게 읽을 수 있다. 나에게는 "웹 어셈블리"와 "웹 브라우저"라는 단어가 나왔을 때 집중력이 1.2배쯤 상승했다.

제일 도움이 될만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블로그 글을 홍보하고 경력으로 발전시키는 부분이다. 우리나라의 현실과 달라서 안 맞는 부분도 있겠지만 적용할만한 내용이 더 많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더 중요한 것은 블로그 글을 쓰는 데서 끝나지 않고 그를 바탕으로 경력 발전을 꾀할 수도 있다는 사고의 전환이지 않을까.

개발자가 블로그도 잘 써야 하나요? 라는 질문에 나름의 답을 하자면 그렇다. 언제까지 개발자로 지내게 될지, 지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더 나은 개발자를 생각한다면 블로그가 도움이 될 것이다. 개발자가 블로그도 잘 쓰는 게 좋다. 적어도 지금은.


책 링크: 교보문고, Yes24, 알라딘

댓글을 남겨주세요

This site uses Akismet to reduce spam. Learn how your comment data is proces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