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날로그를 꿈꾸다

중학교쯤 집에 들어온 컴퓨터라는 물건에 빠져서, 직업도 취미도 그 놈으로 정해버린지 벌써 15년째가 되어간다. 대학교 전공도 관련 학과를 선택해서 갔고 직업도 직장도 십수년전에 생각했던 그대로 컴퓨터와 관련있는 바로 그 일을 하고 있다.

이제서야 내가 너무 0과 1의 세게에서만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운동도 잘 안하지, 컴퓨터외에는 별다른 취미도 없지, 컴퓨터라는 물건이 없으면 뭐가 될까 싶었다.

어제 갑자기 찾아오는건 아날로그에 대한 향수였다.
프로그램 코드 대신에 한문 공부를 해보고 싶었고, 키보드로 타이핑하는 대신에 예쁜 손글씨를 쓰고 싶어졌다. 스포츠 게임을 즐기는 대신에 내 몸으로 움직이고 싶어졌고, 메신저와 메일로 주고받는 대화대신에 전화와 편지를 쓰고 싶어졌다. 그게 갑자기 찾아왔다.

디지털 문화가 매우 편리하고 빠르다는 건 인정하지만, 오히려 예전의 그 멋스러움이나 진중함은 좀 바래져버린 것 같다. 글을 쓸때도 한번 쓰고 나면 고치기 어렵기 때문에 글쓰기 전에 생각하는 습관을 들일 수 있었다면 요즘은 일단 쓰고 고치는 일이 빈번해졌다. 온라인 상의 글에서 그런 멋스러운 글을 찾기란 더욱 쉽지 않다. 되려 곳곳에 보지 않았으면 하는 글들이 사방에 널려있어 지뢰밭을 거니는 기분으로 웹서핑을 할 때도 있다. 남을 상처입히고, 그런걸 재밌다고 키득거리고 또 다시 상처입히고 심하게 상처입은 누군가는 자살하기도 하고…아날로그에서 시작한 우리 세대에서도 일어나는 일인데, 디지털로 시작한 다음 세대들은 대체 어떤 모습일지 상상하기도 힘들다. 솔직히 말하면 더 좋아질거라고 생각하지 않기에 상상하기 싫어진다.

예전에는 아날로그가 싫었다.
얘기하고 관계를 만드는 것보다 채팅하는게 편하고 좋았고, 작은 구멍가게도 한참을 걸어가야 할 정도로 불편한 시골동네도 싫었고, 잘 쓰지 못하는 글씨로 팔목아프게 또박또박 써야했던 편지도 싫었다. 그런데 지금은 오히려 거기에 향수를 느끼고 있다. 사람들하고 얘기하고 싶고, 시골동네의 파란 하늘, 여유로움이 좋고, 잘쓰지 못하는 글씨지만 세상에서 유일한 내 마음이 담긴 편지도 쓰고 싶다(그러고보니 글씨 못쓰는건 변하지 않았구나…).

내일부터라도 조금씩 계획을 세워서 다만 잠시라도 아날로그에 젖어보련다.

  1. 어쩌다가 아날로그의 향수가 느껴졌을까요?
    날이 갈수록 나이를 먹을수록 귀찮아지고, 배는 수평선 방향으로 튀어나오는 통에 직접 움직이고 싶은데, 잘 되질 않는군요.
    요즘 거의 좋아하는것이 사라진(?), 의미있는 일이 없어진. 그런 상태라서요.
    그 계기가 궁금하네요.

    1. 글쎄요… 너무 바빠서 오히려 그런 여유로움이 필요했을지도요?
      어쩌면 그 전부터 해보고 싶었던 것들이 여자친구와 헤어지면서 자신에게 더 집중하게 되면서 표출됐을지도 모르구요, 그것도 아니면 단순한 변심? ^^;

      이유야 모르죠. 그냥 하고 싶을뿐이니까…
      제가 사실… 꽤 단순하게 감정에 충실하게 사는 사람이라서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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